호주 한인타운 인근 시장 모습 (연합뉴스DB) |
"영주권 따게 해주겠다" 속여 사례비 챙기고 노동착취
(시드니=연합뉴스) 정열 특파원 = 복지제도가 비교적 잘 갖춰진 나라로 알려져 이민대상국으로 인기가 높은 편인 호주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영주권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19일 호주 교민사회와 영주권 사기 피해자 등에 따르면 적잖은 교민업주들이 고용주 후원으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허용한 457비자(고용주 후원 임시 취업비자) 제도를 악용, 영주권 취득을 미끼로 한국인 대상 노동착취와 사기행각을 일삼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호주에서 457비자는 일명 '노예비자'로도 불린다.
비자의 승인과 자격유지가 전적으로 고용주의 재량에 달려있다보니 노동자와 고용주의 관계가 아닌, 일종의 주종관계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호주 정부는 외국인 취업희망자가 연매출 30만 호주달러 이상인 호주 고용주의 후원으로 457비자를 취득한 뒤 2년간 비자상태를 유지할 경우 영주권 신청자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일부 악덕 호주 교민업주들이 457비자 후원 및 유지를 미끼로 한국인 취업희망자들에게 사례금을 요구하는가 하면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저임금을 지급하면서 마치 노예처럼 부려먹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피해자 박모(32) 씨는 호주 교민이 운영하는 두부공장에 취업을 했지만 사장이 457비자를 내주는 대가로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임금으로 일할 것을 요구해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하고 있다.
호주의 상징인 시드니오페라하우스 (연합뉴스DB) |
심지어 사장은 고용 필수조건인 산재보험과 연금도 들어주지 않고 초과근무수당이나 주말수당도 전혀 주지 않는데도 박 씨는 행여라도 사장이 457비자를 취소할까봐 전전긍긍하며 노예처럼 일하는 실정이다.
교민이 운영하는 용접회사에 취업한 안모(35) 씨 역시 457비자 발급을 명목으로 사장에게 8천 호주달러(약 800만 원)를 선입금했으나 사장이 돈만 받아 챙긴 뒤 비자를 내주지 않아 소송을 제기했다.
최모(26) 씨는 국내 대형 유학원을 통해 457비자 브로커를 소개받은 뒤 유학원의 지명도만 믿고 소개비조로 돈을 건네고 호주에 왔으나 457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
피해자들은 457비자 발급을 대가로 업주나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는 것 자체가 불법이지만 이 같은 행위가 일반화된 상태라고 입을 모았다.
호주 이민법무사 이용배 씨는 "457비자의 승인이나 유지가 전적으로 고용주의 재량에 달려있다보니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며 "어려운 처지에 처한 동포를 대상으로 악덕 행위를 일삼는 일은 근절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