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얼마전 남편이 이곳에 제 얘기를 올렸더라고요. 달갑지는 않았지만 객관적인 얘기도 들어볼 기회가 되겠다 싶어서 놔뒀는데 뭔가 통쾌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서론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남편 자랑좀 해볼께요. 저희 남편은 초등학교 고학년일 무렵 부모님 따라 이곳으로 이민을 온 조금은 늦은 1.5세예요. 가끔은 여기서 정말 오래 살았나 느낄정도로 한국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요. 아버님 어머님의 영향이 큰거 같더라고요. 대학교때는 한국으로 교환학생도 갔다왔을 정도예요. 그때 저를 만났고요. 나머지 학기를 끝내는 동안 장거리연애 했어요. 캐나다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겠다며 청혼을 해서 어쩌다보니 벌써 아이까지 있어요.
남편은 외동아들에 4대 독자라서 오냐오냐까지는 아니어도 어머님은 꼼짝도 못하시고 아버님은 엄하셔도 남편이 하는 일이라면 도둑질도 눈감아주실 정도로 남편한테만 관대하세요.
글 쓰기 전에 몇몇 글들을 훓어봤는데 보닌까 어제 오늘 한국 특정 지역에 대한 얘기가 많더라고요. 저희 시부모님도 경상도분이세요. 저는 서울 밖을 나가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고요. 지역감정을 조장하려는건 아니지만 정말 가부장적이시고 아들 아들 아시는분들이세요. 참고로 제가 아들을 낳고 난 후로 시아버님과 같은 식탁을 쓸 수 있게 되었어요. 현재 애매하게 시부모님댁에 같이 지내는데 별개의 두 집인데 중간 벽을 허물었다고 할까요? 분가아닌 분가를 하고 있어요. 저녁밥은 대부분 같이 먹고요 어머님 바쁘실땐 제가 아버님 저녁차려드리는 정도예요.
얼마전에 다 겉이 한국에 들어갔다가 어머님께서 치매를 진단받으셨어요. 이제 좀 감이 오시나요? 제가 그 글의 주인공입니다. 어머님께서 치매 초기라 지나친 건망증 정돈데 치매 진단받기 전에 풍을 빗맞았다 하나요? 어른들께서 비슷한 말로 뭐라 하시던데 여튼 거동이 불편하세요. 기저귀까지는 아니지만 혼자 화장실을 잘 못가세요.
이런 와중에 저번주에 한국에서 몬트리올에 남편 일때문에 다 같이 들어왔어요. 어머님은 하루하루 느껴질정도로 안좋아지시고 아이는 어리지 아버님은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나는줄 아시고 남편은 한국에서 급하게 들어올 정도로 급한 일들이 있고 자연스럽게 모든 두집안 살림이 제 몫이 되었어요. 어머님 간호까지요. 저번 주말에 남편이 썼다시피 어머님이 복통을 호소하셔서 응급실에 갔더니 화장실을 너무 오래 안가셔서 변이 나오지 못 할 정도로 굳었다며 장운동이 활발하지 않아 자주 이럴 수 있으니 급하면 파내야한다고 시범을 보여주시더라고요.
저는 사실 남편의 입장이 이해가 가요. 어머님께서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남편이 화장실 가는것만 도와주려해도 역정을 내시고 절대 안가세요. 그런다고 저를 막 부리시지는 않는데 남편보다는 편하다고 생각하시나봐요. 구래서 남편이 자꾸 수치심 얘기를 하더라고요. 엄마도 여잔데 나보다는 니가 하는게 좋지 않겠냐고요. 많은 분들께서 아버님이 하면 되지않냐 해주셨는데 저희 아버님은 저 결혼해서 살면서 단 한번도 부엌 근처에 계시는걸 못봤어요. 물 가지고 오는 자잘한 일들이 모두 어머님 몫이었어요. 아버님이 하신다는건 상상도 못하고요.
저는 느낌상 내 일이 되겠구나 하고 저도 모르게 마음을 먹고 있다가 갑자기 문득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하나 싶어서 싫다고 했어요. 아시다시피 남편은 주장도 고집도 강하고 생각하는말 바로 내뱉는 성격인데 제가 싫다고 하니 벙벙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그날 응급실에서 돌아와 얘기좀 하자더군요. 댓글에 쓴 내용처럼 오만 얘기를 다 하는데 더 하기 싫어지는거예요. 대답 안하고 가만히 앉아있는데 갑자기 저보고 자기같은 남자를 만났으면 복받은 줄알아야지 이런것도 안하면서 권리만 누리려 한다는 얘기 듣고 눈이 뒤집혀 애기방에 문잠그고 들어갔어요. 멍하니 한참을앉아 있었네요.
사실 남편이 친정에도 참 잘해요. 전화도 저보다 더 자주 하고 부모님이랑 여행도 먼저 계획하고 용돈도 먼저 챙겨드리고요. 저 데리고 와 돈 걱정도 많이 안시키고요. 주말에 애기랑도 잘 놀아주고 참 좋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싸울때 항상 레파토리가 사람들은 오고 싶어도 못오고 와서도 영주권 따려고 발버둥인데 저는 아무론 힘들이지 않고 남편을 통해 받았으니 잘해라가 항상 요지였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못 참겠더라고요.
애기방에 앉아 삼일을 생각했어요. 저 남편 대학교에서 만났는데 그때 제가 21살이었어요. 남편은 26살이었고요. 저 22살에 결혼해서 여기 왔어요. 기왕 하는 학교 공부 캐나다에서 해보지 않겠냐고 친정집에 몇일을 설득했어요. 저도 그땐 남편이랑 떨어지는것도 싫고 외국 유학에 꿈도 부풀어 있어 싫진 않았지만 결혼을 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어요. 몇 개월 뒤에 끝끝내 허락해 주셨고 저는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캐나다에 왔습니다. 처음에는 영주권이 있어야 학비가 싸다며 영주권 수속하는동안 영어학원을 다녔어요. 알아서 일처리 해주는 남편이 참 믿음직스럽고 결혼하길 너무 잘했다 싶은 순간 임신이 되어서 학교는 아직까지 문턱도 못 밟아봤습니다. 저 아직 26살이예요. 친구들은 취업준비하고 어학연수 다니는데 저는 매일 살림만 했어요. 외국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남편한테 고마워 하라고 세뇌당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아이방에 들어와 있는 저한테 아침에 일하러 가는사람 빈속으로 보내면 마음이 편하냐길래 그날 당장 짐싸서 나왔어요. 에어비앤비를 찾아 이틀을 예약했는데 아까 아버님께서 보자셔서 다운타운 카페에 갔어요. 이혼할 작정으로 이러냐길래 마음정리중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아이는 못데리고 간다고 명심하라 그러시더라고요. 아버님 가시고 에어비앤비 일주일 연장하고 일주일 뒤에 한국가는 편도 비행기 끊었어요. 후련하면서도 엄마 아빠한테는 뭐라고 설명해야하나 눈앞이 캄캄하지만 댓글들 보고 용기낼 수 있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주저리 늘어놓았네요. 남편은 평생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혼자 분을 삭히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아이가 마음에 걸리지만 5대 독자라서 구박 받을 걱정은 없지만 아깐 아이도 필요없겠다 싶었는데 지금은 또 생각나네요. 일단은 한국에 가서 엄마밥이 너무 먹고싶어요. 제가 여기 와서 친구도 하나 없이 지내느라 글을 쓰다보니 고향친구 만난 기분으로 너무 길게 썼네요. 좋은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