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에서 내로남불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예를 들어 쓴 글이네요.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 문재인 정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관계가 딱 그렇다. 문재인 정부 탄생의 동력이자 명분은 '적폐 청산'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적폐'로 규정하고 "우리는 다르며, 앞으로도 다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4년차로 접어든 지금,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차별화'는 빈 말로 흩어졌다. 최근 정부·여당의 행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동질화'에 가깝다.
①국책사업 예타 면제 비판하더니, 가덕도 신공항은?
"4대강 사업을 강행하기 위해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생략했다. 그 결과는 환경 재앙과 국민 혈세 22조원 낭비였다."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대표 시절인 2015년 6월 문 대통령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4대강 사업 추진을 비판하며 발표한 대국민호소문이다. 야당 시절 민주당은 예타 조사 등을 생략한 보수 정권의 대규모 국책 사업·토목 공사를 끈질기게 비판했다. 수십조원의 손실로 끝난 이명박 정부의 '자원 외교'를 두고도 예타 검토 없이 날림으로 승인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민주당 역시 집권 후 대규모 토목 공사를 남발하며 예타 면제를 일삼고 있다. 예타 면제 사업 액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를 진작에 뛰어 넘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지난 7월까지 예타를 면제받은 대규모 재정지출 사업 사업비는 88조 1,396억원(105건·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자료)에 달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예타 면제 사업 규모(총 83조 9,278억원·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집계)보다 4조 2,118억원이나 많다.
민주당이 26일 발의한 '가덕도 신공항 건설 촉진 특별법'도 신속한 사업 추진을 위한 예타 면제가 핵심이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예타 면제된 4대강 사업을 그렇게나 비판하더니, 이명박 정부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미워하다 닮아간다는 말이 딱 민주당을 두고 하는말"이라고 꼬집었다.
②채동욱·유승민 쫓아낼 땐 "무섭다"더니, 윤석열은?
"결국....끝내....독하게 매듭을 짓는군요. 무섭습니다."
문 대통령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사퇴하자 2013년 9월 트위터에 쓴 글이다. 2012년 대선 때 벌어진 '국가정보원의 댓글 조작' 사건 수사를 이끌던 채 전 총장은 난데 없이 제기된 '혼외자 논란'에 떠밀려 사퇴했다. '정권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는 수사에 대해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죄목으로 박근혜 정부가 채 전 총장을 찍어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2015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전 의원은 청와대의 눈엣 가시였다. 여당 원내대표인데도 박 전 대통령의 뜻을 자주 거슬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휘 하에, 친박근혜계(친박계)는 유 전 의원를 원내대표에서 몰아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비판했다.
위기에 빠진 권력은 껄끄러운 인사를 힘으로 제거하려는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문재인 정부도 그 유혹에 빠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청구와 직무 배제, 민주당의 금태섭 전 의원 징계 등이 딱 그런 사례다. 친문재인계는 '윤 총장 때문에 문 대통령의 퇴임 후가 평안하지 않을 수 있다'며 거침 없이 칼을 휘두르는 중이다.
③불통 꾸짖더니...기자회견은 '6번'
문 대통령은 보수 정권의 '불통'을 자주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2016년 8월 페이스북에서 박근혜 정부를 "통하지 않고 꽉 막혀서 숨막히는 불통 정권"이라고 비판하면서 '대통령의 말하기'라는 책을 소개했다. "그들에게 책읽기 과제로 드리고 싶은 책"이라는 추천사도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소통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 언론 브리핑은 6번에 그친다. 탄핵으로 임기가 단축된 박 전 대통령(5번)보다 겨우 1번 많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20번)보다는 턱없이 적다. 추 장관·윤 총장의 갈등, 조국 사태 등 나라를 뒤흔드는 사건이 벌어져도 문 대통령은 입을 꾹 닫곤 한다.
④입법 독주 비판하더니, '거대 여당' 되자...
"직권상정 자체가 불법이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대한민국을 비상 사태로 만들었다."
문 대통령이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을 비판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일부다. 19대 국회 다수당이었던 새누리당은 대테러활동에 관한 국가정보원 권한을 넓히는 테러방지법안을 강행 처리하려 했고,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로 막아섰다. 당시 민주당은 "국회는 수의 힘이 아닌 토론에 근거한 민주주의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부르짖었다.
21대 총선 압승으로 민주당이 174석의 '거대 여당'이 되자, '민주주의'를 어느 새 잊은 듯 하다. 민주당은 개원 국회에서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코로나 추경안을 단독 처리한 데 이어 지난 7월 임시국회에서 부동산 대책·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후속 법안 등도 단독 처리했다. "174석을 몰아 준 민심을 받들어야 한다"는 논리를 들어서다.
연말까지 이어지는 정기국회에서 민주당의 입법 독주는 계속될 전망이다. 야당의 공수처 구성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 경제계가 반대하는 경제3법 등을 야당이 반대해도 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